당신이 무조건 좋은학교를 나와야하는 이유.
여러분은 왜 편입을 하고 있을까요?
대체, 무엇이 여러분을 편입공부를 하게 만든걸까요?
왜, 기업에선 학벌을 많이볼까요?
(반론으로, 요새 학벌 블라인드처리하고 면접보는데요?라는 질문이 나올거같아서 미리 답변합니다.
블라인드로 면접을 봐도 결국 뽑힌 사람들 면면을 보면 대다수가 학벌 좋은 사람들이 뽑힙니다.)
답을 두 글자로 요약해드리죠.
‘신뢰’
“우리가 널 왜 뽑아야돼?” “내가 왜 너랑 사귀어야돼?”
신뢰가 부족하다면,
내가 이러이러한 능력이 있어욧!! 난 예쁘단 말이야, 잘생겼단 말이야!
날 뽑아주세욧!! 나랑 사겨줘!! 내가 잘할게 ㅠㅠ
이라고 매번 지긋지긋하게 남들보다 더 어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마 사회에서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기위해서
편입공부를 하고 있을 겁니다.
본인이 그걸 인지하고있든, 인지하고있지않든 말이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으니까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명문대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실력과 노력으로 좋은 대학교에 진학한 많은 사람들을 추월해 앞서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좋은 대학교에 합격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그러지 못했다면 평생동안 아마 수백 번 이상은 들을
“실력과 노력으로 많은 사람을 추월하신 분이 왜 하필 좋은 대학에는 합격하지 못하셨습니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이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여러분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불필요한 검증 과정을 생략받으며 삶의 효율을 높이고,
삶의 여러 국면에서 강력한 자신감과 자기 확신을 갖게 함으로써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하는 믿음직한 무기가 됩니다.
저 또한 그렇구요.
뭘 하든 내가 하면, 못한다라는 생각을 안합니다.
저는 실제로 편입이후에,
내가 하면 다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가득차있습니다.
현재, 부정적인 마인드는 거의 0에 수렴합니다.
신이 저를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돌려보내준다면,
서울대 무조건 합격할 자신있습니다.
바로 합격 못한다면, 삼수를 해서라도 서울대 갈겁니다.
왜냐면,
대학 한 급간이 높아질 수록,
그것이 사회에서 발휘하는 ‘신뢰’란 무기는
실로 어마어마하거든요.
저만 위에 처럼 생각할까요?
물론 본인은 소신껏 카페한다고 하겠지만,
사회의 구성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지금 편입공부할 때는,
마치 학벌이 이 세상의 전부인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막상 명문대에 합격하고 나면 이렇게 얘기하죠:
“좋은 대학 와봐야 별 거 없다. 예쁜 여친도 안 생기고, 대학 제대로 못 갔어도 돈 많았던 옆집 친구가 더 잘 나간다.”
어떤 명문대학생들은 자신이 명문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답을 말하기 위해서 이렇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학벌주의는 이 나라의 정말 고질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실력과 노력이지 출신 학교가 아니다.”
사실 명문대에 입학하고 학점 스트레스에, 취업 전선의 선배들의 현실적인(우울한) 이야기들에 시달리고 있으면 정말 그렇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전의 나는 주변에서 정말 공부를 잘 하는, 미래를 촉망받는 인재였는데,
지금은 그런 인재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캠퍼스를 떠나서 다시 사회로 돌아오면 조금만 발품을 팔 준비가 되어 있고, 타인과의 화학반응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아, 정말 학벌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이었구나.’
그리고 명문대 출신이라는 학벌이 주는 여러 이득을 본의 아니게 누리면서 이런 여유있는 생각도 가끔은 하게 되죠:
“다음 세대에는, 10년 간의 노력으로 90년을 평가 받는, 이런 불공평한 학벌주의가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편입공부할적에,
전 책상머리에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좋은학교를 나오지못하면
좋은회사에 취업하지 못 할 것이고,
그 결과, 결혼도 못하고(한다해도 내가 원치않는 사람이랑) 빌빌거리며 살겠구나.
자식은 어떻게 낳아 기를것이며…등등….
내가 나태하게 살면 그건 내 자식과 내 손자의 삶의 범위를 제약하고 말 것이라는 부담을 안고 내 삶을 계획하고, 공부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편입하면서 완전 인생이 바뀌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그 전환점은
쏟아 부은 노력들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합격증을 손에 쥐고 나서부터 시작되었죠.
제가 편입한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에는
그 당시엔, 사법고시나 회계사 세무사 최종합격생을 특채로 뽑는 전형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 동기중엔
영어 잘 하는 동기는 물론이고,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등
현재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직업과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이로인해, 저 자신도 많은 자극이 되며 도움을 알게모르게 많이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언제든지 열심히 노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노력을 바로 지금 할 때,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어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30년 후에 여러분의 아이에게 여러분이 지금 해야만 했던 것을 다그치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과거에 열심히했고,
그에대한 좋은 결과가 있었고, 부모가 열심히 살았고 살고있다라는걸
아이가 몸소 느끼면
다그치지 않아도, 아이는 저절로 따라올 것 입니다.
요약하자면,
‘신뢰의 수준과 거래비용은 반비례한다’
여러분의 성과의 수준이 하나씩 낮아질 수록
여러분은 그 윗단계가 할 필요도없는 노력을
평생 댓가를 치러가며 살 것입니다.
친구를 만날때든, 연인을 만날때든, 취업을 할때든.
세상을 살 때, 매 순간, 새로운 모든 것을 마주칠 때 말이죠.
위 글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를 수능강사 조정식쌤이 하셨네요.
메가스터디 영어과목 1타 조정식의 수업 중간 조언이라고 해두겠습니다.
네가 진학하는 대학과 그 다음에 너의 미래 장래에 얼마나 잘 살아갈 것인가는
금전적이든 뭐든 사실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무슨 관계가 있겠어.
서울대 간다고 다 재벌로 살아?
아니잖아. 서울대 간다고다 평균적으로 다 잘 살고 지방대간 다고 평균적으로 다 못 살고 아니라고.
확률상으로 위쪽이 더 높지 않나요?
취업시장에서는 그럴지 모르겠는데
또 사업이라는 영역되면 또 도표가 다를걸?
내가 무슨 말하는 건지 알겠지?
선생님 그럼 공부하지 말란 거냐 그게 아니고.
상위권 대학을 갔을 때 너에게 떨어지는
이득이 딱 3개가 있어.
대학을 괜찮은데 가면 네가 똑똑한 사람이라는 걸 딱히 증명하지 않아도 돼.
남들이 다 얘는 똑똑하겠지라고 알아줘.
이거 인생살 때 되게 편한 거야.
너희들이 역으로 생각해봐 학원에 처음 수업 들으러 왔을 때 머리 색깔 이상한 선생님이 딱 들어왔어.
이 사람 뭔가 했을 거 아냐?
그런데 학력란에 “그래도 네가 이름 정도는 들어본 학교야”
그러니까. 아 그래도 얘가 그렇게 나쁜 얘는 아니겠지 생각한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니?
그런데, 그 학력란에 다른 학교 네가 이름 못 들어본 이상한 학교가 들어가 있었다고 생각해봐라.
인상 확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렇지?
수업을 몇 번 듣기까지 얘가 멀쩡한 얘인지 아닌지 판단이 안 섰을 거라고
이거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2번째 유유상종 끼리끼리논다고 하죠.
찮은 학교를 가면 주변에 다 어느 정도 똘똘한 얘들이 가요.
대학 레벨이 높아진다는 게 두 번째 의미는 이게 되게 커요.
주변에 비슷비슷하게 똑똑한 얘들끼리만 모여있다.
3번째 일반적인 일을 할 때
학벌이 괜찮으면 2번째 3번째
기회가 쉽게 옵니다.
네가 학원 원장이야.
선생님을 뽑으려고 해.
두 명이 원서를 썼는데 둘 다 강의 경력이 없네?
둘 다 불러서 시강을 해보라 그래.
둘 다 강의가 개판이야.
한 사람은 서울대영교과를 나왔고 한 사람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지방대를 나왔어.
둘 다 강의를 되게 못해.
그 상황이면 그러면 지방대 아 역시 어쩔 수 없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겠니?
서울대면 경력이 없어서 그러지 시켜보면
괜찮지 않을까? 사람의 편견이라는 거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나는 팩트를 얘기하는 겁니다.
네 인생의 길이랑 편리함 3가지랑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공부를 하는 게 나아요.
선생님 저는요 대한민국 최고의 중고차 판매원이 될 겁니다.
그런 분은 딱히 학벌이 필요 없겠죠.
“학벌이 나쁘면 아무것도 못해요”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니까.
공부가 꼭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언제까지 어떤 취급을 당하며 살아야 되는지
네가 살아가야 할 분야에서 어떤 말하는지 전달되셨죠?